스티브 잡스와 애니메이션

10228 진우빈

몇 년전 신문을 읽다가 LG경제연구원에서 발표한 ‘명품 CEO의 조건’이라는 보고서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CEO가 갖춰야 할 8가지 조건이 나옵니다. 선견지명, 창의성, 용병술, 인간미, 배움에 대한 열정, 넘치는 활력, 정직한 품성과 도덕성, 사회적 책임과 더불어 초심을 잃지 않는 자세가 그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조건 중에서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두 번째 조건인 창의성이었습니다. 평소 제가 롤모델로 존경해온 스티브 잡스가 창의적 CEO의 대표사례로 자세히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애플’의 CEO인 그는 몇 년 전 세계적인 경영컨설팅회사인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940명의 CEO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현존하는 가장 창의성 높은 경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스티브 잡스는 왜 이토록 영향력 있는 CEO로 존경받고 있는 것일까요? 그는 한 마디로 IT업계를 대표하는 혁신의 아이콘이었습니다. 애플을 설립하고 개인용 컴퓨터를 내놓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부터 췌장암으로 작고한 2011년까지 쭉 그래왔다고 생각합니다. 잡스가 직접 만들어낸 제품은 아니지만, 세계 최초로 상품화 시켰다고 할 수 있는 제품들만 해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예를 들면 PC (개인용 퍼스널 컴퓨터), 정보를 저장하는 장치인 플로피 디스크와 USB, 마우스를 사용하는 그래픽 운영체제(GUI), 대용량의 mp3플레이어, 그리고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아이폰이라는 고유명사가 한 동안 스마트폰과 동의어처럼 쓰였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잡스가 내놓은 혁신적인 제품들은 어떤 제품 전체를 상징하는 보통명사처럼 사용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성공을 가져다준 일등공신 중에 애니메이션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잡스가 애니메이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영화 제작자인 조지 루카스로부터 컴퓨터그래픽 사업부를 사들여 PIXAR를 설립하면서부터였습니다. 어쨌든 잡스는 PIXAR가 본격적으로 수익을 내기 시작할 때까지 1년에 1천만 달러라는 큰 돈을 계속 투자했습니다.

1995년 세계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인 [토이 스토리]의 대성공을 시작으로 [토이 스토리2]를 발표한 2000년대 초반까지 잡스와 PIXAR는 말 그대로 화려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한편, [니모를 찾아서], [몬스터 주식회사], [인크레더블], [업] 등등 연이어 내놓은 3D 애니메이션의 반응도 뜨거워서 지금까지 PIXAR는 전 세계적으로 2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여섯 개의 애니메이션 중 세 개가 PIXAR의 작품(나머지 세 개는 디즈니의 작품)이라고 하니, 단기간 내에 PIXAR가 얼마나 고속 성장을 한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PIXAR에서는 애니메이션 한 편을 제작할 때 최신의 제작 기술을 총동원 하는 것은 물론, ‘스토리’를 기획하는 데만 전체 제작기간의 2/3 가량을 투자한다고 합니다. 물론 지금껏 PIXAR가 3D 애니메이션을 통해 보여준 창의적인 사고 능력, 그리고 흥미와 감동이 있는 이이기를 창출하는 능력은 오늘날 문화 산업의 핵심적인 성공요인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토이 스토리'처럼 100% 컴퓨터 그래픽 기술로만 제작된 명품 3D 애니메이션이 등장한 것도, 그 결과 “디지털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유형의 영화산업이 진화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스티브 잡스 덕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잡스 그 자신은 애니메이션 전문가도 콘텐츠 개발자도 아니었지만, 컴퓨터 산업을 뛰어 넘는 컴퓨터 애니메이션 산업의 가능성을 믿고 일찌감치 승부수를 던진 것 만큼은 누가 뭐래도 분명한 잡스의 공로일 것입니다. 또한, 애니메이션 분야의 선두 주자였던 디즈니와 손을 잡기로 결정함으로써 PIXAR를 제2의 디즈니로 성장시킨 장본인도 다름 아닌 잡스였기 때문입니다.

잡스처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넘치는 인재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이 나와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정보화 시대를 선도하는 IT 초강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